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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연합군 이끈 로버트리, 미국에 떠도는 그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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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 메거진
 
입력 2017-08-19
ㆍ조회: 283      
남부연합군 이끈 로버트리, 미국에 떠도는 그의 망령




미국 내 인종갈등을 폭발시킨 샬러츠빌 폭력사태의 시발점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군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E 리 장군 동상 철거였다. 리 장군은 남북전쟁의 영웅이기에, 리 장군의 동상 철거는 남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다.

리 장군에 대한 남부인들의 사랑은 대단하다. 가장 보수적인 남부 앨라배마주의 전직 판사인 로버트 E 리 키는 인종편향적인 판결로 악명이 높았다. 그는 사소한 잘못을 저지를 흑인들에게 사형 내지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는 흑인 피고인의 변호사들에게 항상 "나 로버트 리요"라고 소개했다. 자신의 이름에서 '키'를 빼고 로버트 리로 불리기를 선호한 것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와이먼 파크에 있던 로버트 리, 스톤월 잭슨 장군의 동상이 철거된 뒤 볼티모어시 환경미화원들이 동상 제단에 쓰여 있던 글을 지우고 있다. 

미국 독립전쟁의 영웅인 라이트 호스 해리 헨리 리 장군의 아들로 태어난 로버트 E 리 장군은 웨스트 포인트를 졸업하고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일어난 뒤 상관인 윈필드 스코트 장군이 남부동맹군과 싸우라며 남부진압 사령관 직위를 제안하자 그는 고향 버지니아주와는 싸울 수 없다며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남부 동맹의 지휘관이 되어 싸웠다.

대부대 지휘 경력이 없었던 그는 고전했지만 남부 장군으로 승전과 패전을 거듭하며 자리 잡았다. 가장 유명한 패전은 '게티즈버그 전투'다. 역사가들은 단발 소총 시대에 넓게 트인 평원에 대부대를 이끌고 포진한 그의 어이없는 전략적 실패를 참패의 원인으로 꼽는다. 남부군 총사령관이 된 지 불과 몇 주일 만에, 리 장군은 1865년 4월 9일 버지니아주 법원에서 북부군 사령관인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에게 정식 항복했다. 

 
신(新) 나치 극우파들이 반대파 시위대를 향한 차량돌진 범죄까지 자행하면서 최소 3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리 장군은 패장이었지만 남부뿐만 아니라 북부에서도 존경받았다. 그의 기개와 의무에 대한 헌신, 군사전술 등이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와 샬러츠빌, 메릴랜드주 볼티모어, 텍사스주 댈러스와 오스틴,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 등 남과 북을 가리지 않고 설치된 그의 동상은 그 명성을 잘 보여준다.

직업군인인 리 장군은 어머니에게서 노예를 유산으로 받은 것 외에는 재산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버지니아주 최대의 노예 소유주인 알링턴의 커스티스 가문의 딸과 결혼해 재산을 모두 물려받았다. 장인이 죽었을 때에는 휴가를 내서 혼란에 빠진 처가의 영지에 가서 해방을 기대하고 있던 노예들의 저항에 부닥쳐야 했다.

리 장군은 노예들에게 가혹한 사람이었고 가문의 노예감독들에게 탈출하다가 붙잡힌 노예들에게 심한 매질을 하도록 시켰다. 1856년에 쓴 한 편지에서는 노예제도가 "도덕적, 정치적으로 악"이라고 썼지만, 그러면서도 같은 편지에서 노예해방은 하느님도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며 흑인들은 아프리카에 있을 때보다 미국에 와서 더 잘살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 리 장군은 남부에서 자신을 기려 기념비를 세우려는 움직임에 반대했다. 그는 "미국은 남북전쟁을 뛰어넘어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사망 후 남부 재건운동을 펼치던 사람들은 리 장군을 남부동맹의 상징이자 중심 인물로 치켜세웠다. 남부인들은 지는 전쟁인 줄 알면서도 '대의'를 위해 싸웠던 리 장군을 보수의 아이콘으로 추앙하며 동상을 건립했다. 특히 1920년대 백인들의 극우단체 '큐 클럭스 클랜(KKK)단'의 재활약과 인종차별에 입각한 흑백 분리법의 통과 시기에 기념사업과 그의 동상 건립이 성행했다.

미국 조폐국은 리 장군을 기리는 동전을 내놓았고, 우표도 발행했다. 북군과 북부 연방정부에서 남북전쟁 승리와 노예해방을 이끌었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그만큼 영예를 누린 인물이 없다.
 

하지만 미국의 흑인과 라틴계 국민은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리 장군의 조형물이 인종주의를 자극한다며 남북전쟁 당시의 남부동맹 기념물과 동상들을 철거하도록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뉴올리언스, 사우스캐롤라이나, 휴스턴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시위원회에서 올해 시립공원 내의 리 장군 동상 철거를 결정했지만 이에 대한 반대파들의 법정소송이 잇따르며 철거가 연기되어 왔다. 논란이 이어지면서 기존의 백인 우월주의 세력뿐만 아니라 리 장군과 남부 동맹을 존경한다는 신(新) 나치 극우파들까지 가세했다. 결국 이들이 이번에 반대파 시위대를 향한 차량돌진 범죄까지 자행하면서 최소 3명이 죽고 수십 명이 부상을 당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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