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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
 Column

칼럼 모음
 
입력 2017/07/22
ㆍ조회: 43      
탈원전, 과학적 합리성과 사회적 합리성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놓고 찬반논쟁이 뜨겁다. 탈원전에 반대하는 학자들은 시민 배심원단이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을 결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을 비전문가들이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맞는 말일까?

우리 시대의 과학은 높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 과학은 중세 이후 온갖 그릇된 믿음을 격파해오며, 종교가 차지하는 위상에 버금가는 위치에 올랐다. 왕이 스스로 신으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왕의 권리는 과학적 사실 앞에 상처를 입었다.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말할 때, 이는 믿을 만하다, 신뢰할 만하다고 해석된다.

과학의 위상은 올라갔지만 사회는 과학적으로 굴러가지 않고, 인간도 과학적으로 살지 않는다. 이는 과학이 가치에 대해 말하지 않고 말할 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은 어떤 사실이 있고 없음, 많고 적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좋다 나쁘다,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않는다. 종교가 아직도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천국이 있고 없음이 아니라, 돈·명예·지위에 연연하지 않고 사랑·자비·헌신·봉사·희생이라는 가치를 설파하고 있어서다. 그래서 과학자들도 종교를 믿는다.

과학은 숫자나 확률 같은 ‘정해진’ 용어로 말한다. 가치가 아닌 관리를 중시한 용어다. 지난달 18일 고리 1호기를 영구정지했을 때, 언론은 원전업계의 표현을 빌려 원자로가 식었다고 표현했다. 핵물리학자들이 정해놓은 식었다는 온도는 93도였다. 환경론자는 그래서 원전을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한다.

세상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 과학적 합리성 하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회적 합리성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나는 원전 유지론자의 주장에는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대체 에너지 개발에 어려움이 있고, 향후 전기료 인상 가능성도 있다. 3개월이란 시한도 문제 삼을 수 있다. 문제는 이걸 감안하더라도 원전 유지는 과학적 합리성마저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원전 유지론의 골자는 크게 세 가지다. 원전을 돌리니까 그나마 싸게 전기를 이용해왔다는 것이고, 대체로 안전하며, 대체 에너지가 부족해 원전산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동한 지 40년 만에 폐쇄된 고리 1호기는 엄청난 전기 에너지를 공급했다. 하지만 핵폐기물을 안전하게 보관 관리해야 하는 큰 숙제를 남겼다. 핵쓰레기, 즉 핵폐기물은 방사능에 따라 중·저준위와 고준위 핵폐기물로 나뉜다. 문제는 고준위 핵폐기물인데 이건 오래 보관해야 한다. 보통 10만년, 독일은 100만년으로 잡고 있다. 기성세대는 그동안 원전을 잘 써먹었는데, 후손들은 부서지지 않고, 녹슬지 않고 새지 않는 창고를 지어 10만년 동안 보관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후대의 미래를 저당 잡은 셈이다. 이게 정당한가. 10만년을 비용으로 계산이나 할 수 있을까?

원전은 단 한 번 사고로 절멸에 가까운 재앙을 입을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원전 밀집도가 높은 부산·울산에서 사고가 나면 수백만명이 위험하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가진 도시와 지역사회가 초토화된다. 원전사고는 교통 사고가 아니다. 확률로 얘기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신화는 과장되고 미화됐다.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사상으로서의 3·11>에서 각국의 원전사고를 낱낱이 열거했다. 1957년 영국의 셀라필드 원전사고는 30년이 지나서야 공표됐고, 1961년 미국 해군의 SL-1이라는 군사용 시험 원자로에서 난 사고는 규모조차 밝혀지지 않았으며, 1963년 프랑스 생로망 데조 원전은 연료 용해사고를 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사고, 1986년 체르노빌 참사, 2008년에는 프랑스의 트라카스탱 원전에서 방사선 누출사고가 터졌다. 미국과 러시아는 스무차례 이상 핵잠수함의 침몰과 노심용해를 공표했다. 군의 핵사고는 더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특성상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사사키는 “이게 전부라는 보증은 없다”며 “어느 나라든 숨기느라 애쓰고 있다”고 했다. 쓰나미 같은 천재지변뿐 아니라 실수나 실험 도중 사고가 나기도 한다. 체르노빌이 그랬다.

게다가 원전은 사양산업이다. 핵발전 비율이 75%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프랑스도 2020년까지 50%로 감축하기로 했다. 독일과 대만 등은 원전 폐지를 결정했다. 핵물리학계와 원전산업은 함께 성장해온 동반자적 관계다. 핵물리학이 원전산업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원전산업은 그들의 연구를 지원해왔다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탈원전 결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더 나은 세상과 미래를 위해 사회적,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최병준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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