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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테르와 샤롯데, 운명의 도시를 찾다
 Travel

그곳에 가고 싶다
 
입력 2017-07-24 (월) 11:04
ㆍ추천: 0  ㆍ조회: 42      
베르테르와 샤롯데, 운명의 도시를 찾다




독일 중부 도시 헤센주에 있는 베츨라(Wetzlar)는 인구 5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다. 베츨라는 제국(帝國)대법원이 있던 곳이며 헤센주의 대학 도시이기도 하다. 정작 베츨라가 유명해진 것은 대문호 괴테의 문학적 고향이기 때문이다. 베츨라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초상처럼 생각하며 읽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실제 배경지이다. 베츨라 거리에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아직도 돌아다닐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도시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마음의 지문을 남겨놓았다.

괴테가 머물렀던 문학의 고장 베츨라

베츨라에 가게 된 것은 웹드라마 전문 국제 영화제 다이 시리알(Die Seriale 2017) 웹페스트 행사가 베츨라 근교 도시인 기센에서 열렸기 때문이었다. 웹드라마 심사위원으로 초청받은 필자는 심사를 마친 뒤 기센 영화제 조직위원회의 후원으로 기센에서 차로 25분 정도 떨어진 베츨라를 찾았다. 베츨라 광장이 펼쳐진 이곳은 다이 시리알 집행위원장인 총고 도브로트카 감독의 유명 웹시리즈 ‘넘버 오브 사일런스(Number of Silence)’의 촬영 장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베츨라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한때 머물렀던 마을이자 누구나 알고 있는 세계 명작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실제 배경지다. 베츨라는 괴테의 고향인 프랑크푸르트에서 북쪽으로 약 120㎞ 떨어진 곳에 있다. 인구 5만 명의 베츨라 구시가지에는 괴테를 기념하는 거리와 로테 거리, 기념관 등이 있다. 돌바닥이 촘촘하게 깔린 비스듬한 언덕길 위로 베츨라 광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마을 수호신처럼 서 있는 대성당이 눈에 띄었다. 대성당은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 때문에 여러 시대의 사상과 문화 양식들이 성당 안에 모두 녹아 있었다. 다양한 양식이 모였어도 대성당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베츨라 광장 중앙에 있는 베츨라 성당. 여러 시기에 걸쳐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성당 안에는 개신교와 가톨릭 교도들이 함께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의자를 독특하게 배열해 놓았다. 양쪽 끝에 가톨릭과 개신교 기단이 있고, 중앙에 의자들은 등받이를 양쪽으로 이동할 수 있게 했다.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앉아서 예배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개신교와 가톨릭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모양새다. 정문 위 조각상에는 악마가 돈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을 감싸안고 있고 그들을 발 밑에 두고 있는 성모마리아 상이 보인다.

비스듬한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마을은 화려한 바로크식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 서 있다. 베이지 색깔의 기본 벽 바탕에 나무 무늬 모양으로 직사각형과 정사각형, 때로는 대각선으로 짙은 빨간 프레임들이 눈에 띄었다.

괴테와 로테의 운명적 만남

젊은 베르테르의 연인인 샤를로테의 생가로 향했다. 실존 인물이었던 샤를로테가 살던 집은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박물관은 샤를로테 일가족이 살던 자취가 생생히 보존돼 있었다. 이 집은 1285년 지어졌으며 튜튼 독일 기사단이 머물면서 이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관장하는 집이었다고 한다.

지역 귀족 솔름스 가문이 800년간 소유했던 브라운펠스 성

베츨라 지역에는 법원이 다수 있어, 그 당시 많은 법조계 젊은이들이 법조 경력을 쌓고 싶어서 이 마을에 이주했다. 괴테도 제국대법원에서 법관시보로 일하며 베츨라에 몇 달을 묵었다. 어느 날 괴테는 샤를로테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로테가 살았던 집의 현관문을 열자마자 좁은 현관에 바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계단 중간 턱이 있는데, 보통 손님이 오면 중간 계단 턱에서 손님을 맞이한다고 한다. 손님의 계층에 따라 손님을 맞이하는 인사가 다르다고 한다. 계단 앞에 좁은 공간 로비 벽에는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다. 아이들을 돌보는 처녀와 뒤편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있는 조그만 그림이다. 어린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여인이 로테이고 문에 서 있는 남자는 괴테다. 샤를로테 버프(Charlotte Buff)는 1753년에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16명의 자녀를 낳았고 샤를로테가 둘째딸이었다. 과다한 출산 때문인지 샤를로테의 자매 중 4명이나 어린 시절에 죽었고, 그녀의 어머니도 일찍 생을 마감했다.

나폴레옹, 신격호 회장에게도 큰 영향

1772년 괴테가 처음으로 샤를로테의 집을 방문했을 때 12명의 자녀가 그 집에 살고 있었고, 샤를로테는 어린 동생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그해 여름 괴테와 샤를로테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괴테는 샤를로테를 친구가 아니라 여인으로 느꼈고 샤를로테는 괴테에게 친구 이상은 아니라고 했다. 괴테는 실연의 상처를 안고 베츨라를 떠났다. 얼마 후 그가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갔을 때 베츨라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괴테의 친구가 자살할 때 사용한 권총

베츨라에 있던 친구가 샤를로테를 사랑하다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괴테는 충격을 받고 그 사건에 영감을 받아서 체질에 맞지 않는 변호사를 때려치우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자신의 실제 경험에 친구의 죽음을 연결해 써낸 작품이 바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당시 소설을 읽고 감동한 젊은이들은 베르테르가 입었던 파란색 연미복에 노란색 조끼를 즐겨 입고 다녔다. 또 실연이나 우울증에 빠진 수많은 사람이 권총으로 자살하는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며 ‘베르테르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박물관에는 손잡이가 호두나무로 된 구경 7㎜ 권총이 전시돼 있다. 이 권총이 실제로 괴테의 친구가 자살할 때 썼던 것이다. 자살에 쓰인 영국제 권총은 1750년 제조된 것으로 요한 크리스티안 케스트너가 갖고 있던 호신용 권총이었다. 얄궂게도 케스트너는 샤를로테의 약혼자였다.

‘베르테르’는 주인공 남자의 이름인데 정확하게 발음하면 베르터(Werther)가 맞다. 이 소설은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왕족이나 귀족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사서 읽었다. 당시 25세의 젊은 작가 괴테는 이 소설 하나로 유명해졌다.

나폴레옹은 전쟁터에도 이 책을 가지고 다녔으며 여러 번 읽었다고 한다. 나폴레옹과 괴테는 직접 만나 소설에 대해 토론하기도 했다. 이 책은 근대화 시대 동아시아에 소개됐을 때 신지식인들에게 엄청난 문화적 충격을 던진 작품이기도 하다.

롯데그룹의 창업자인 신격호 회장은 젊은 시절 이 작품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서 샤를로테의 이름을 따서 자신의 기업 이름을 롯데(lotte)라고 지었다. 롯데백화점 상품권에도 샤를로테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후대에 연극, 오페라, 영화로도 자주 만들어졌으며 한국에서는 뮤지컬로 제작돼 2000년 초연됐다. 소설 속 주인공은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괴테는 80세 넘게 살았다.

유명 비어가든 파울라너도 있어

파울라너에서 생산한 생맥주를 든 종업원

해가 질 무렵, 독일이 자랑하는 독일 맥주를 마시러 베츨라 강가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를 연결하는 다리 앞에 있는 파울라너(Paulaner) 비어가든으로 향했다. 독일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맥주 소비국이다. 독일에서 생산되고 있는 맥주의 종류만도 4000종이 넘는다고 한다. 독일은 수질이 나쁘고 식수가 부족해 그 대용으로 맥주를 즐겨 마셔왔기 때문에 맥주를 술이 아니라 음료수처럼 생각한다. 알프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석회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탁하다. 이 때문에 물을 정제해야 하는데 독일지역에서는 맥주를 이용했다. 독일 맥주의 역사를 보면 BC 4200년께 인류가 곡류를 재배하면서 빵과 같이 생겨났다고 한다. 빵으로 맥주를 빚던 게르만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보리를 싹 틔우고 맥아를 건조해 엿기름을 만들어 맥주를 빚기 시작했다. 그 뒤로 보리 재배가 그리스와 로마를 거쳐 유럽까지 전해졌다. 유럽에서는 초기에 가내공업으로 수도원에서 양조했고 기계업 발달과 함께 점차 대규모 맥주공장이 생겨났다.

맥주는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침전물의 위치에 따라 크게 상면발효맥주와 하면발효맥주로 나뉜다. 또 알코올 함량이나 양조 방식의 차이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상면발효맥주는 전통적인 맥주 양조 방법으로, 맥아즙과 효모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긴 침전물이 맥주통 위에 내려앉은 맥주를 말한다. 알트비어와 바이첸비어 등이 이에 속한다. 하면발효맥주는 맥아즙과 효모를 발효하는 과정에서 생긴 침전물이 맥주통 아래에 내려앉은 맥주를 말하는 것으로 맥주의 가공을 훨씬 더 쉽게 해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라거는 메르첸비어, 보크 등이 있다.

독일에서는 맥주 양조 방식에 대한 법률인 맥주순수령(Purity Law)이 1516년 정해져 맥주에 호프, 물, 보리의 순수 자연원료 외에 방부제 같은 화학물질을 첨가하면 법적으로 처벌받는다. 국민이 식음료로 사용하는 맥주에 해로운 성분이 첨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는데, 맥주에 방부제를 넣지 않기 때문에 장기 보존이 어렵고, 냉장보관을 해야 한다. 그만큼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 네덜란드나 미국의 맥주보다 경쟁력은 떨어지지만 독일 하면 맥주가 연상될 만큼 높은 수준의 맥주로 지금까지 인정받고 있다.
▶▶여행팁

브라운펠스 성에서 내려다본 마을 풍경. 가족들이 투어하기 좋은 곳이다.

베츨라로 가려면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공항에 내려 기차로 한 시간 정도 가면 된다. 베츨라 마을 정보 사이트에선 로테의 집 정보를 비롯해 베츨라 관광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소개돼 있다. 브라운펠스 성(Castle Braunfels)은 베츨라 옆에 있는 브라운펠스 마을에 있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성이 태양 아래 푸른 하늘을 찌르며 견고하게 서 있다. 브라운펠스 성은 13세기에 지어져서 15~17세기에 여러 번에 걸쳐 확장됐으며, 이 지역 귀족인 솔름스 브라운펠스 가문이 800년간 소유했다. 성안에는 솔름스 귀족 가문의 인물을 그린 그림이 많이 걸려 있다. 귀족들이 사용하던 조각작품들, 양탄자(Gobelin Tapestry), 다양한 가구들이 전시돼 있다. 당시 그들의 영향력은 유럽 전역과 심지어 미국까지 관계돼 있었다. 성안 뜰 넓은 공간은 야외 오페라 공연장으로도 쓰인다. 유명 오페라 공연도 가끔 열렸다고 한다.

성 뒤편에서 언덕 아래로 도시 전체가 보인다. 가족이 투어하기에는 아주 좋은 장소다. 50분 정도 소요된다. 브라운펠스 성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성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베츨라=글·사진 강영만 영화감독·K웹페스트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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